안녕하세요! 서양화가로 활동중인 유호선입니다.
섬유패션디자인을 전공하여 대기업 텍스타일디자이너로 활발하게 일을 하다가 남편이 상해로 주재원발령을 받아서 중국생활을 1997년부터 시작을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을 중국 광주에서 출산했고, 중국의 위해, 대련, 북경 등 여러 지역에서 거주하였습니다. 남편을 따라서 여러 도시로 옮겨다니면서 딸과 아들이 친구들을 사귀고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답니다. 자녀들 교육때문에 북경에 정착하게 되었고 딸을 직접 입시미술지도를 하기위하여 입시미술학원을 2009년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녀 입시지도를 부모가 직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실듯합니다. 감사하게도 딸은 북경청화대학교에 입학을 하였고 함께 준비한 학생들도 원하는 대학에 대부분 합격을 하였습니다. 중국은 자녀들의 대학 선택의 폭이 넓어서 중국대학, 한국대학, 미국대학, 유럽대학, 홍콩대학 등 학생들이 희망하는 대학으로 입시지도를 11년 동안 하였습니다. 아들은 재외국민특례입학으로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고있습니다.
대학진학을 위하여 학생들은 자소서를 쓰기위하여 혹은 봉사활동 등 증명서가 필요하였기에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함께 해외로 벽화와 어린이 미술캠프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우간다, 인도네시아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벽화를 그렸고, 언어소통이 어렵지만 현지 어린이들과 미술 캠프도 하면서 재능기부에 대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은 뜨거운물이 콸콸나오는 집, 푹신한 침대, 막히지않는 변기, 24시간 밝혀주는 전기, 풍성한 식탁 등 작고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알게되었습니다.
어둡고 칙칙한 빈민가 마을이 벽화로 인하여 환하게 밝아지고 처음으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본 아이들은 화가의 꿈을 꾸기도 하고,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의 봉사활동에 감사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대접을 해줍니다. 우리가 섬기러 갔다가 오히려 섬김을 받고 오게 되어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짧은 일정의 봉사활동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다음에는 안 간다고 한 학생들은 그 때 그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것을 나누었을 때 느끼는 벅찬 감동을 경험한 학생들은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사는 어른이 되어간답니다.
18년동안 중국생활을 이렇게 보람차게 생활했던 내가 2020년 코로나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고 그후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3기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봉사와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살았던 나에게 내려진 암판정은 세상이 나를 배신한 것 같은 억울함과 분함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이 무너진듯한 마음이었습니다. 25cm대장 절재 수술을 받은 후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빠지는 머리카락, 걷기도 힘들게 저려오는 발, 벗겨지는 피부, 심한 구토로 먹지도 못하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나싶습니다.
항암치료가 끝난 후에도 면역력은 회복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으로 지치고 힘들었지만 기도와 그림 작업이 다시 나를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손이 떨리고 저려서 세밀한 그림을 그릴 수 없어서 시작한 십자가 시리즈 작업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투병생활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건강도 회복되고 자신감도 회복되고 이제 많은 것들이 회복되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고, 그 후에도 재발되지 않도록 건강과 일을 잘 관리해야겠습니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면서 그동안 경험한 해외생활과 미술교육, 봉사활동, 암투병 생활 등 나의 작은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잘 살은 인생일 것입니다.